"내 아이돌이라면 수천만원 펑펑".. 억소리 나는 '홈마'
머니S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8.23. 06:07 수정 2019.08.23. 09:11
‘덕질’이 모여 하나의 소비트렌드를 만들어냈다. 팬 집단인 ‘팬덤’의 덩치가 점점 커지자 이들의 영향력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팬덤영화가 수천만관객을 모았으며 유통가에서는 완판 행진을 이어간다. 기업들도 ‘팬덤모시기’에 한창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품을 소비하는 팬덤은 기업에게 ‘귀하신 덕후님’이 됐다. <머니S>가 새로운 소비주체가 된 ‘팬덤’을 조명했다. 팬덤이 국내 경제에 미친 파급효과와 함께 팬덤경제를 추구하는 기업 사례를 살펴봤다. 또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진화한 팬덤의 삶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빠’ 이상의 힘, 팬덤 경제학-하] 소비자이자 생산자… '프로슈머'가 되다
#. 직장인 A씨(29)는 지난 5월 엑소 멤버 백현의 생일을 맞아 30만원을 지출했다. 동네 커피전문점을 대관해 백현 생일 이벤트를 마련한 것. A씨는 자신이 직접 찍은 백현 사진으로 컵홀더를 디자인해 카페에 오는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카페 내부에는 백현 사진이 담긴 액자와 현수막을 걸었다. A씨가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를 진행한 이유는 단 하나다. 백현 ‘홈마’로서 “난 내 아이돌을 위해 이 정도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팬들은 아이돌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 내 아이돌의 행복이나 성공을 위해 혹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요즘 세상에서 아낌없이 돈을 쓰는 팬덤은 문화산업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팬덤이 가진 구매력과 영향력은 연예 기획사를 대신할 정도다. HOT, 핑클 등 1세대 아이돌 팬덤은 방송사나 기획사에서 생산하는 콘텐츠 소비자에 머물렀다. 이와 달리 3~4세대인 현역 아이돌의 팬덤은 직접 콘텐츠나 굿즈를 제작한다. 팬덤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프로슈머’(프로듀서+컨슈머)로 진화한 것이다.
◆“내 아이돌 홍보는 내 손으로”
아이돌 팬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스타를 홍보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광고판에 스타의 얼굴을 내걸거나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 또 스타 이름을 딴 숲이나 길을 조성하거나 작은 섬을 사들이기도 한다.
기업화된 팬덤도 있다. 이른바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다. 홈마는 ‘대포 카메라’로 통칭되는 고가의 장비를 들고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다. 이후 원본 사진이나 영상을 보정해 자신이 운영하는 팬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자신과 같은 팬들을 끌어 모은다.
홈마가 등장하면서 팬덤 활동은 경제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홈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수십~수백장 단위로 값을 매겨 판매한다. 나아가 사진을 인쇄한 스티커, 포토북, 응원도구 등 2차 창작물을 생산해 수익을 창출한다.
전문적인 사업 계획도 있다. 콘서트 1~2개월 전에는 응원 슬로건을, 9~10월에는 다음해 다이어리나 시즌 그리팅(달력)을 제작한다. 심지어 유료 전시회를 여는 홈마도 있다. 전시된 사진을 경매에 붙여 팔기도 하고 전시장에서 굿즈를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회 입장권 수익에 굿즈 판매액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물론 누구나 홈마가 되고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다. 홈마에도 등급이 있다. 콘텐츠의 양과 질에 따라 팔로워수가 달라져서다. 보통 팔로워 10만명을 보유하면 대형 홈마로 꼽힌다. 방탄소년단 정국 홈마나 엑소 세훈 홈마와 같이 10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초대형 홈마도 있다.
하지만 팬덤 측은 사실상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홈마 활동을 위해서는 음악 방송은 물론 팬 사인회, 지방·해외 공연에 돈과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5만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홈마인 A씨는 “대부분 홈마는 손해를 감수한다. 굿즈 판매금을 홈마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외 콘서트 한두번 갔다오면 남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홈마계의 원탑이 억대 매출을 찍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하지만 그 홈마는 생일 서포트로 하루에 1000만원씩 쓰는 인물이다. 1억을 벌었다면 몇억을 썼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팬덤시장 규모 얼마나 되나
팬덤의 시장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단순히 음원이나 음반, 콘서트, 굿즈 수익으로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특히 팬덤이 부가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아이돌 광고로 큰 수혜를 입었다. 아이돌 광고 건수는 ▲2014년 76건 ▲2015년 231건 ▲2016년 542건 ▲2017년 1038건 ▲2018년 9월까지 1576건으로 늘었다. 특히 강다니엘을 배출한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 방송 이후인 2017년에는 전년 대비 92% 상승했다. 당시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이 데뷔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광고 유형도 스크린 도어부터 조명 광고판, 역내 포스터, 전동차 액자, 전동차 래핑까지 다양하다. 이 중 스크린 조명광고 단가는 1개월 기준 ▲1호선 200만~300만원 ▲2호선 150만~450만원 ▲3호선 150만~350만원 ▲4호선 150만~400만원 ▲5~8호선 90만~145만원 등이다. 특히 아이돌 광고판의 성지로 꼽히는 삼성역, 강남역, 홍대입구역 등은 450만원 최고가를 호가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통째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버스 전체를 래핑해 돌아다니는 광고판으로 활용하거나 지하철 내부를 래핑해 승객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광고하는 식이다. 지하철을 통해 한달 동안 광고할 경우 그 비용은 3호선 기준 1량에 715만원, 10량 전체는 5720만원에 육박한다.
커피전문점에서도 팬덤을 반긴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카페 사장 B씨는 “이벤트 진행 비용을 따로 받지 않더라도 평소보다 손님이 2~3배 많이 찾아 수익이 난다”며 “팬덤 사이에서 컵홀더 이벤트 카페로 소문이 나서 오는 11월 초까지 예약이 꽉 차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팬덤시장이 커지면서 경제적 파급효과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팬덤이 아이돌 사진이나 영상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초상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또 온라인상에서 선입금·후제작으로 진행되는 굿즈 판매는 그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탈세나 사기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팬덤이 프로슈머 역할을 하면서 팬들의 니즈를 다양하게 충족시키고 있다”면서도 “팬덤이 굿즈 장사를 하면서 아이돌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유명 홈마는 인기 많은 아이돌들로 ‘덕질’ 대상을 옮겨가며 굿즈 장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https://news.v.daum.net/v/20190823060704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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